목양칼럼 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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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7
    우리의 충(忠)은 예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충(忠)은 예수님을 향해야 합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은 인물은 아마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성품의 가장 큰 특징은 ‘충’(忠) 일 것입니다. 백의종군하며 그를 죽이려 했던 임금을 위해서 왜 충성하느냐고 말리는 사람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오늘은 신임 안수집사와 권사 임직식이 있는 날입니다. 임직식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지만 교회의 직분은 ‘지위’가 아니라 ‘직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고전 4:2).   충성은 먼저 교회 공동체와 맡은 직분을 향해야 합니다. 요즘은 “..다운”이 부족한 세상입니다. 목사다운 목사, 장로다운 장로, 권사다운 권사, 집사다운 집사가 되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직분자들의 충은 성도들을 향해야 합니다. 성도들과 교회를 섬기는 마음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예배 생활, 성경 공부, 헌금과 봉사, 전도와 선교에 누구보다도 더 충성함으로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직분자의 가장 중요한 충은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향해야 합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단어는 “믿는다” “신뢰한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충성스러움이란 그런 신뢰함을 통해서 나오는 그 사람의 삶의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이란 신뢰하는 것,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직분자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실력과 인격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여 가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에 위축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충(忠)이 예수님을 향할 때 우리는 가장 충성된 일꾼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2023년 6월 18일 박일룡 목사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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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지나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는 자가 참 지혜자입니다.
    지나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는 자가 참 지혜자입니다.   졸업 시즌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했고 또 졸업을 할 것입니다. 제 딸도 오늘 대학원을 졸업합니다. 입학할 때는 언제 마칠까 했는데 벌써 졸업을 하고 이젠 직장인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작할 때가 있으면 또 끝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기억합니다.   전도서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현재 삶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전 3:1). 고려말 성리학자인 우탁은 막을 수 없는 백발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은 다시 덩굴로 막고, 찾아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고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마지막 구절에서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힘을 저자는 가슴이 아리도록 잘 표현해 냅니다.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젊음도, 건강도, 일도, 명예도 언젠가는 끝날 때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곧 없어질 것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두고 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내가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어려움도 또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달걀도 굴러가다가 서는 모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되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쉰 길 나무도 베면 끝이 있다”는 말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도 비슷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꾸준히 해 나가고 참고 견디면 끝이 있기에 너무 현실의 어려움에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가면서 다시 영원한 것은 무엇이고 지나갈 것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혹 지나갈 것, 영원하지 않은 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재의 고난이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아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잠시 있는 고난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라고 성도들을 격려합니다(롬 8:31-39).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당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기쁘게 여긴 모세의 믿음을 닮아가라고 히브리서를 기록한 위대한 설교자는 우리에게 도전합니다(히 11:25, 26).   지나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는 자가 참 지혜자입니다.     2023년 6월 11일 박일룡 목사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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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 아니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문화 칼럼리스트인 이정 씨는 심리학 자료를 바탕으로 펴낸 <사랑; 짓>이라는 책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한다.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못 생긴 내게 자꾸 예쁘다고 한다.하루 종일 온통 내 생각만을 하는 것 같다.롤러 코스트를 탄 것 같은 격한 감정의 기복을 느낀다.내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아파한다.나를 위해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뭔가 강력한 힘에 끌려가는 느낌이 있다. 나에 대한 단점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열애 중인 젊은이들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여전히 이런 사랑을 나눈다면 그 부부는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순애보’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살펴본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니 사랑의 감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증거를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증거가 맘에 와닿습니다. “내게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의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십니다.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부족한 나를 여전히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시고, 나를 눈동자같이 지켜보십니다.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변화시키시고, 나의 단점을 보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라고 말합니다(롬 5:8).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의 그토록 애절한 사랑을 그리워한다면 먼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를 알아갈 때 우리도 진정한 사랑을 하게 하실 것이고,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2023년 6월 4일 박일룡 목사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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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신은 죽었나?
    신은 죽었나?   "최근에 일어난 최대 사건 -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는 것, 기독교 신에 대한 신앙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 - 은 유럽에 이미 그 첫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중략) 그런데 바로 이 믿음이 점차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신 자체가 우리의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제 입증된다면?"   위 글은 19세기말 독일의 실존추의 철학지인 프리드리히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 말한 내용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잘하는 책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다시 신의 죽음을 언급합니다.   니체는 초월적인 존재를 의지하거나, 신의 구원을 의지하는 것은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만든다는 주장 합니다. 그래서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인간이 스스로 책임감 있게 서야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삶의 어려움을 신에게 의존하지 말고 네 스스로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자신과 같은 철학자가 초인(超人, Übermensch)이 되어 그런 인간을 돕고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사람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그가 나중에는 정신병에 걸려서 정신병동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입니다.   21세기 초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또 다른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이 내가 의도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책을 펼칠 때 종교를 가졌던 독자들은 책을 덮을 때면 무신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나 주제넘은 낙관론인가! 물론 독실한 신앙인은 논증에 면역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수백 년간 발전되어 온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어린 시절을 장기간 교화되어 온 결과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은 약간만 도와주면 종교라는 악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서면 더 행복할까요? 신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거부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일까요? 니체는 초인이 다스려야 인간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도킨스는 신이 없이 인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면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를 더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2023년 5월 28일 박일룡 목사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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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함께 하면 조금 늦게 가더라도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함께 하면 조금 늦게 가더라도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혼자 뛰면 쉽게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인 3각으로 뛰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서로 발이 맞지 않아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2인 3각으로 뛰려면 서로 자기가 편한 스탭이 아니라 남의 스탭에 맞추어야 합니다. 보폭도 서로 일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발을 맞추어도 혼자 뛰는 것만큼 빨리 달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스탭을 맞추어 ‘하나, 둘’ 하며 어깨를 맞잡고 달리기 시작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혼자 달릴 때 알지 못하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함께 하는 행복일 것입니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더 큰 만족이 있습니다.   열명이 발을 묶고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넘어지고 엉키고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만 스탭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사람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명이 어깨동무하고 달리는 것보다 더 빨리 달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성취감은 훨씬 클 것입니다. 그렇게 달려서 종착점까지 가게 되면 모두가 한 팀이라는 자부심으로 하나 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적인 연대를 느낄 때 사람은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혼자 있으면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편함’이 아닐까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기쁨도 나눌 때 더 기쁘고, 슬픔도 누군가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감당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온유, 겸손, 오래 참음, 사랑으로 용납함’이라고 말합니다(엡 4:2, 3). 이런 태도와 자세가 있다면 부부관계도, 교회 생활도,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깊은 유대감과 친밀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꼭 지불해야 하는 대가입니다. 단순히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자세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와 비전이기도 합니다.   온유, 겸손, 오래 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함으로 하나 되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교회 생활이 참 행복하고 즐겁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지친 누군가가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23년 5월 21일 박일룡 목사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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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원칙을 가진 사람이 경쟁력 있는 사람입니다.
    원칙을 가진 사람이 경쟁력 있는 사람입니다.   100명이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에서 100명까지 등수가 매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100명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뛰면 100명 모두 일등을 할 수 있습니다. 뛰는 방향만이 아니라 가는 방식도 각자 정하게 한다면 어떨까요? 더 이상 남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이 가는 방향대로, 자신이 세운 원리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만의 가치를 지키며 사는 삶을 ‘원칙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름대로 자기 삶의 원칙과 방향을 가지고 그것에 자신을 헌신하여, 주변과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 만의 삶을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남의 평가에 맞추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가치에 집중하기 때문에 남과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 사회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론 하나밖에 없는 것, 유일한 것, 대체 불가한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렇게 자기 만의 삶의 가치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때로는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원칙을 가지고 사는 삶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 없다는 그런 원칙, 그런 구별됨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런 삶의 가치에 대한 구별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그러니’, ‘형편이 그러니’가 아니라 신앙의 원리대로 살아감으로 환경을 이겨 나가겠다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본질이나 가치를 붙들기 때문입니다.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은 강령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생활의 원리를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비전, 목적, 사명, 생활 원리를 가르치고 그런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전합니다. 그런 도전을 자기 내면에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신앙인으로 자라는 것을 지난 80여 년의 SFC 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번 전국 SFC 수련회에도 이런 신앙의 가치를 가르칠 것입니다. 생활의 원리를 가진 신앙인으로 이들이 자란다면 이 시대에 진정한 ‘실력’과 ‘경쟁력’을 가진 아이들이 될 것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두도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 원리를 가진 신앙인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5월 7일 박일룡 목사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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