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25 페이지


  • Rohthem Ma-Dang
  • 로뎀마당

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25
    와서 보니 글이 아니라 사람이 보였습니다
    와서 보니 글이 아니라 사람이 보였습니다   LAX에서 출발하여 이틀에 거친 여행 후에 첫 번째 사역지인 라오스의 고도 루앙프라방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작은 공항에서 단출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정창용 선교사님이 대여한 승합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사진으로만 뵈었는데 생각보다 훤칠하며 활달한 분이셨습니다. 몇 해 동안 서로 선교 보고와 문자로 소통하다가 직접 만나니 반가웠고 그렇게 낯설지 않은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 방문한 루앙프라방 국립 고아학교의 모습에 멤버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60년대 고아원의 모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기숙사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고아학교의 부설인 선교사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과학센터도 방문하여 학생들이 열심히 영어와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시설만 보다가 학생들을 가까이서 학생들을 만나보니 모두 심성이 착해 보이며 예의도 바른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고아학교의 400여 명의 아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준비를 분주하게 했습니다. 나무를 때워 가마솥보다 큰 밥통에 밥을 하고, 카레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몇 명 고학년 학생들은 살라드를 직접 만들었고, 나무 불 지피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몇 분의 선생님들이 함께 도와서 카레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대접했습니다. 물론 모든 팀원들은 사우나를 한 것처럼 땀에 흠뻑 젖었고요.   그렇게 학생들을 잠시나마 만나며 교제하면서 성도님들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예의도 바르고, 심성이 착해 보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을 두고 떠나오는 마음 한 구석에는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이들이 건실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주일 예배는 정선교사님의 댁에서 선교사님과 함께 드렸습니다. 예배 후 선교사님과의 대담시간에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아렸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도 없이, 이 멀고 더운 곳에서 사역하시는 삶의 외로움도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그 마음이 더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와서 보니 글이 아니라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환경이 보이고,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간절하게 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보내 주시는 선교보고가 살아서 움직이는 현실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 현장에 살아 보았고 많은 선교지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와서 보니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함께 한 팀원들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더 많은 성도님들이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단기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23년 10월 22일 박일룡 목사
    2023.10.18
    Read More
  • 24
    선교는 마땅히 해야 하는 책무입니다
    선교는 마땅히 해야 하는 책무입니다   채무자(債務者)란 “채권자에게 급부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법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급부’란 갚은 의무를 말합니다. 그래서 갚지 않을 때에는 강제로 수입이나 재산을 압류할 수 있습니다. 빚을 진다는 것은 그런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채무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빌린 빚을 제 때 갚지 못하고 있을 때 마음의 부담이 상당합니다. 남의 돈을 빌려 쓰고도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돈을 갚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기 쓸 것을 아껴가면서, 일자리를 하나 더 가지더라도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빚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특히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교회 성도들이 드린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를 이방인들의 특별한 호의가 아니라, 빚진 것을 갚는 것으로 표현합니다(롬 15:26, 27). 그들에게 영적인 것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로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이 받은 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말합니다(눅 12:48). 우리가 받아서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이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행을 하는 것은 자기 것을 가지고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실행하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를 섬기는 것은 빚을 갚는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하는 마땅한 의무이지 마치 우리의 호의나 선심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모든 일을 다 하고 난 후에도 우리는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할 것뿐입니다”라는 고백을 드리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또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고 표현합니다(롬 1:14). 바울은 성도들이 드린 연보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전함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려고 합니다. 또 믿지 않는 그의 동족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000마일이 넘는 거리를 기꺼이 여행하여 찾아갑니다. 그 일을 끝마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겠다면서 말입니다(행 20:24).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단기선교비전팀이 나가서 사역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평양을 넘어서 동남아시아 까지 가는 먼 길이지만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2023년 10월 15일 박일룡 목사
    2023.10.11
    Read More
  • 23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마음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마음 해야 하는 일 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겨우 하는 사람이 있고 거뜬히 해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까지 기꺼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을 위해 일하는 가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바깥 일은 열심히 하는데 집안 일은 해야 하는 것도 안 하는 사람이 있고, 바깥일은 해야 하는 것만 하지만 자기 일과 자기 가족의 일에는 진심인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는 자들에게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고,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마 5:38-42). 밖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와서 다시 주인의 음식을 준비하는 종이 그 모든 수고를 기꺼이 감당한 후에도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5-10).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 복음을 전한 후에 로마를 지나 서반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언저리에 로마의 반대쪽인 예루살렘으로 내려 가면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각 처에서 형제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 가지 말라고 합니다.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도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가 가지고 가는 연보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그는 원래 계획했던 로마로 가면서 사정 설명을 하는 편지를 예루살렘으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마일이 넘는 길을 우회해야 함에도 예루살렘으로 기꺼이 내려갑니다.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보내는 구제헌금을 자신이 직접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롬 15:16).  복음을 위한 일에 바울은 진심이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사역의 열매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저희 선교팀도 우리의 사랑을 가지고 라오스, 베트남까지 갑니다. 직접 가지 않고 돈만 보내도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사랑의 선물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5:27).  복음을 위한 일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까지 감당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8일 박일룡 목사       
    2023.10.11
    Read More
  • 22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얼마전 뇌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이 사물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뇌가 이미 경험한 것만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서로 에로틱하게 안고 있는 그림을 보여 주었는데 아이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돌고래를 본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익숙하게 경험하여 알고 있는 것이 먼저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무 물체도 없이 도형만 있는 것 같은 그림 안에 감추어진 물체가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눈의 초점을 그림 뒤에 두어야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일반 그림을 보듯이 표면에 집중하면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모양을 볼 수 없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보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네모난 상자와 같은 육면체의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육면체의 상자는 어떻게 들고 있더라도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세 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른 세 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육면체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 뒷면은 보지 못했으면서도 말입니다.  우리가 보았다, 들었다, 경험했다고 하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본 것도 내가 인지하는 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에 촛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게 되고, 보이는 것도 있고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육면체도 뒤에 있는 세면은 볼 수 없는데 사람에게는 얼마나 다양한 면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경험한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정죄할 때도 있습니다.  조금 우리의 시선을 다양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판단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그 인생의 경험을 알고, 그의 성격도 알고, 그가 살아온 과정도 알고 보면 조금은 더 그 사람이 입체적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허함이 사람과의 관계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늘 더 알아가고 배워가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추석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도 접어들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남가주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 해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조금 더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가 맺은 관계들을 성찰하고, 하나님을 더 향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영글어 가면 좋겠습니다. 2023년 10월 1일 박일룡 목사       
    2023.10.01
    Read More
  • 21
    향유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향유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향유하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그 뜻이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향유는 ‘누리어 가지다’ 또는 ‘영위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이미 가진 것을 누리다’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단어의 뜻을 알고 나니 향유란 말이 더 진하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것을 보면 ‘소유’하려고 합니다. 예쁜 꽃을 보아도 꺾어 자기 책상에 꽃아 두고 보고 싶어 합니다. 권력도, 힘도, 지혜도, 사랑도 좋은 것이기에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소유욕으로 오히려 가진 것을 즐기며 누리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꾸 소유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해 달라고,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그가 이미 주신 것들을 향유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주신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묵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유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삶, 그 아들을 통해서 내게 주신 사랑을 음미하며 누리는 것도 하나님을 향유하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궁핍한 생활일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고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참 멋진 말과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향유하는 자는 그 안에서 자족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소유보다는 더 향유하기를 원하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2023년 9월 24일 박일룡 목사
    2023.09.20
    Read More
  • 20
    여호와가 우리의 안전지대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안전지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온통 세상이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모로코에서 123년 만의 가장 큰 지진으로 또 다시 2천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리비야에서는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에는 네바다 지역에 여름 폭우가 내려 라스베가스가 홍수 피해를 입고, 네바다 사막에서 행사를 하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고립이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부는 토네이도로, 동남부는 허리케인으로, 서부는 산불과 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망 좋은 언덕에 집이 있다면 요즘은 산불 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곳에 집이 있던지 ‘빅 원’이 오면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이런 재앙은 대비할 시간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큰 돌로 만들고 아름다운 나무로 내부를 장식하고 금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성막에 비하면 너무나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찾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결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불타고 모든 보화는 약탈을 당했습니다.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성막의 두배 크기로 60규빗*20규빗이었습니다(왕상 6:2). 그런데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새예루살렘은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만이천스타디온*만이천스타디온의 크기입니다. 한 스타디온이 185미터 정도이니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규빗과는 차원이 다른 사이즈입니다. 길이만 엘에이에서 텍사스까지 정도의 거리가 될 것입니다. 성곽의 높이는 144규빗입니다.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회복되는 성전은 지극히 크고 든든할 뿐 아니라 정방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방형은 성전의 지성소의 규격입니다. 그것은 회복되는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없이 모든 성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임재 앞에 거하는 그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은 안전한 장소가 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우리의 안전지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에 있는 더 크고 온전한 성, 무너지지 않을 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우리의 안전지대를 만들려고 발버둥 치기 보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의 시온성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여호와를 안전지대로 삼는 자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할 것입니다(시 4:8).   2023년 9월 17일 박일룡 목사  
    2023.09.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