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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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43
    당신은 교인입니까 제자입니까?
    당신은 교인입니까 제자입니까?   “당신은 신자입니까 아니면 제자입니까?”   누군가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신자란 말과 제자란 말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을 “제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6:13).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120명의 성도들을 “제자들”이라고 말하고(행 1:12) 신자들이 늘자 “제자들이 더 많아졌다”라고 표현합니다(행 6:1).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11:26). 예수님의 대사명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세례를 베풀라”는 것입니다(마 28:19). 세례를 베풀고 나중에 제자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를 우리 인생의 주인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이제 내 삶을 그분에게 드리고 그분의 도제(제자)가 되어서 그분을 따르는 삶으로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고 예수님처럼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께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과 당신의 권위(능력)를 주셨습니다.   달라스 윌라드 목사는 <잊혀진 제자도>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피에만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가 넘쳐난다. 나는 그들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라고 합니다. 도전적인 표현이지만 우리의 잘못된 개념을 통렬히 지적해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스승을 따르는 도제들은 수습기간을 지나면 스스로 선생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끝까지 그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사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를 따라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신자가 제자입니다. 제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서로 나눌 수 없는 동의어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제자로 살아야 하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2024년 3월 3일 박일룡 목사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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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필립 켈러의 ‘양과 목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켈러는 동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본토박이 목자들 틈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후에 토론토 대학교에서 농업 토양학자로 훈련을 쌓은 후에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농학 연구와 토양관리 목장 개발을 위해서 여러 해 일했습니다. 후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생태학 연구에 전념하며 신문에 기고도 하고 저술도 한 농학자이며 저술가였습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양 때를 키우면서 경험한 내용을 근거로 시편 23편을 해석해 놓은 책입니다. 출판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책입니다.   “양과 목자”란 책에서 필립 켈러는 시편 23편을 이렇게 다시 자기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내 길만 고집했습니다. 그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먹었습니다. 그것이 독풀일지라도...   나는 당장의 목마름만 채웠습니다. 그 물이 썩은 구정물일지라도...   나는 높은 자리만 탐합니다. 동료를 들이받고서라도...   나는 자꾸 울타리 밖을 꿈꿉니다. 내 한 몸 지킬 힘도 없으면서...   이런 나를 그분은 돌보십니다.지팡이와 막대기로 바른 길로 이끄시고, 신선한 꼴과 시원한 물로 채워 주십니다.그리고, 세상의 악한 것 들로부터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것이 여전히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런 나를 품에 안고 돌보시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024년 2월 25일 박일룡 목사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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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금맥을 찾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광부들은 ‘유래카’(Eureka)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유래카는 “내가 발견했다, 찾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입니다. 알다시피 미국인들이 그리스어로 이렇게 소리친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에 얽힌 유명한 일화 때문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왕의 부탁으로 순금 왕관에 불순물이 첨가된 것인지 알기 위해서 몇 일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자 목욕탕에 앉아서도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그 때 자신의 몸이 욕탕에 들어가면서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부피의 차이를 계산해 보면 불순물이 첨가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불순물이 첨가되면 물체의 밀도가 달라지게 되고 그러면 부피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묘안이 떠오르자 그는 너무 기뻐서 벗은 몸으로 거리로 달려 나와 ‘유레카’를 외쳤다는 데서 기인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 했을 때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산삼을 캐던 우리 선조들은 산삼을 발견하게 되면 산이 떠나도록 “심봤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기쁨의 소리이며, 감사의 외침이며, 또한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스러움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우리가 모두 눈으로 그 영광을 보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는 자만 알고, 보는 자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화를 발견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물을 다 팔아서 살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3:44).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눈으로 그 가치를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우리 몸에 가졌다고 말합니다(고후 4:7). 이것이 얼마나 큰 가치와 능력이 있는지 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약하고 낡아져 가고 있는 우리의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보배의 가치를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설명합니다(6절).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리의 영원한 하늘 집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 3:1).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2월 18일 박일룡 목사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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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
    기도는 정중동(靜中動)임과 동시에 망중한 (忙中閑)의 시간입니다
    기도는 정중동(靜中動)임과 동시에 망중한 (忙中閑)의 시간입니다   정중동(靜中動)이라는 것은 조용한 가운데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과 강이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계속되는 자연의 움직임으로 유지되고 있고,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는 조용하게 물 위를 떠 다니는 것 같지만 물 밑에서는 두 발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중동’과 함께 ‘망중한’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원래는 忙中有閑(망중유한)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바쁜 가운데도 한가함이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이치던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든지 조용한 것 같아도 계속 움직이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듯이 바쁜 일들 가운데서도 한가함의 여유로움도 있어야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고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마가복음은 시작됩니다. “곧,” “즉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듯이 예수님이 계속해서 움직이시고, 일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쁘게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면서 마가는 1장에서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예수님은 먼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아침 아직 밝기 전”에 라는 말은 삶의 우선순위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맡겨 주신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할 능력을 얻게 되고, 자기 욕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쁜 일상이 늘 우리를 휘몰아칩니다. 그래서 망중유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쉼을 가지면서 마음에도, 육신에도 숨 돌릴 틈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소원도 아뢰며,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힘주심을 경험하는 만남의 시간은 가만히 있는 시간 같지만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기도의 시간은 홀로 있는 것 같지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계속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정중동이며 망중한의 시간입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리의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2월 11일 박일룡 목사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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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기억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기억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크레딧 카드로 얼마 짜리 물건을 구입한 적이 있나구요? 갑자기 물어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그날은 목양실에만 있었으니 쓰지 않은 것은 확실한데 그래도 크레딧 카드는 며칠 지나고 청구되는 경우도 있으니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럭 걱정이 되었습니다. 치매가 시작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중에 집에 가서 물어보니 크레딧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상해서 스탑 페이먼트를 하고 확인 차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가 쓴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숨을 놓았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의하면 사람은 배운 것을 20분 후에 40%, 1시간 후에는 50%, 일주일 후에는 80%를 잊어버리고, 한 달 후면 90%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잊어버리는 것은 뇌의 자연스러운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는 인간은 본성상 ‘망각의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망각은 단순한 타성력이나 이성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삶을 기능하게 하는 하나의 동력이자 적극적인 장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망각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있으면 잊어버림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 행복할 수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할 때 아내에게 기념일이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것에 선물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적으로 주일만 지킨다면서 말입니다. 제가 잘 기억하지 못하니 미리 실망하지 않도록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이런 기념일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삶에 익숙해져 버리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해 주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기억장치를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주시고, 절기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 되시고, 광야 길을 인도해 주시고, 지금도 소산의 복을 주신 분임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장치입니다. 매일 성경 묵상도 또 다른 기억 장치가 될 것입니다. 다양한 기억장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일을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2월 4일 박일룡 목사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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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삶의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라
    삶의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라   점심때가 돼 가면 가끔 아내에게서 문자가 옵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 거야?” 제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나도 몰라.” 제가 한편으로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뭘 먹을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퇴근 때가 되면 또 문자가 올 때가 있습니다. “저녁은 뭘 먹을까?” 이럴 때는 또 “아무거나 있는 거.” 이래서 또 아내의 의중을 몰라주는 무뚝뚝한 남편이 되어 버립니다.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말해봐. 내가 사가지고 갈게”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아 나도 먹고 싶었는데. 같이 먹자” 이렇게 말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뭘 돈 들게 사 먹어. 난 당신 만들어 주는 게 제일 맛있어” 이럽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내 음식 맛있다고 칭찬하는 것만큼 속보이고 멍청한 짓이 없는데 말입니다. 음식 할 것도 없고, 하기도 싫고 하니까 물어보는데 그 맘을 몰라 주고 돈 걱정부터 합니다.   이래 저래 우리는 날마다 뭘 먹을까 뭘 마실까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나가서 먹자고 해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한 참을 고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음료수점에 가도 뭘 마실까도 요즘은 옵션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참을 고민해야 합니다.   요즘은 음식은 그냥 먹고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보아도 맛집 소개가 많습니다. 맛집 투어도 관광 상품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은 원산지, 커피 생산 시기, 로스팅 방법 등을 다 살펴서 그 맛을 즐깁니다. 미슐랭에서 선정한 최고의 요릿집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라고 하십니다(전 11:9). 먹고 마시는 것도 각자 원하는 대로 즐기는 것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각자 마음에 원하는 것들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전 12:1). 사도 바울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0:31).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먹고, 무엇을 위해서 마실까”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삶의 가장 일상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성도)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1월 28일 박일룡 목사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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