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20 페이지


  • Rohthem 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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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55
    우리는 대자연보다 더 영구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대자연보다 더 영구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다시 그리고 오랜만에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저는 도시보다는 자연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산과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새롭게 자란 연녹색으로 싱그러운 나뭇잎과 그 사이에 탑처럼 쏟아 있는 진녹색의 침엽수가 아름다운 색의 조합을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흰 눈은 봄기운에 힘들어 하지만 아직은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생을 살면서 사별의 슬픔에 아파하고 질병의 고통에 힘겨워합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가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칩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분주한 삶을 잠시 뒤로하고 대자연의 광활함과 유구함 앞에서 잠시 잠깐 살다 가는 인생의 일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또한 동시에 어떤 알지 못하는 경외감으로 평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원주민들은 이 광활한 대자연을 “어머니”(Mother Nature)라고 부르며 경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이 광활하고 유구하다면 이 자연을 만들고 다스리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크고, 더 영원하실까요. 그리고 그 광활하시고 유구하신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게 여기지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의 고통에도 마음을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을 위해서 이 모든 자연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2024년 5월 26일 박일룡 목사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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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4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의 환자들을 보살폈던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Ware)는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과의 경험을 토대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말기 암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뜻대로 한번 살아 봤었다면일을 좀 적당히 하면서 살 것을내 기분에 좀 솔직하게 살았다면, 화내고 싶을 땐 화도 내고오래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 걸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 볼 걸   아쉬움이 없는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다 한다고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지난주를 돌아보며 저를 행복하게 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인도를 떠난 지 10여 년 만에 인도에서 함께 했던 선교사님 내외를 만나 교제할 수 있었던 시간도 행복했고, 오후에는 EC 멤버들을 위해 짜장밥으로 섬겨 주신 권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기억에 남고 행복했던 시간은 열심히 일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도 우리가 다 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행복한 추억들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에 중요한 일들, 다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계획해 보면 좋겠습니다. 작은 일상의 일이라도.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있을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왜 그 때라도 해 보지 않았을까”라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지금 아직 함께 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2024년 5월 19일 박일룡 목사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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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
    모두가 함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함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의 달리기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 5명이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으로 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일등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사연은 연골무형성증으로 키가 자라지 않아 늘 꼴찌만 하는 친구의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달리기 시합을 위하여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미리 말씀을 드리고 모두 손을 잡고 결승점까지 달려가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서로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바둥바둥 경쟁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던 일화였습니다.   40,000 km를 날아서 이동하는 기러기는 브이 자로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여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러함으로 서로의 날개짓이 양력을 일으켜서 71%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아가면서 쉴 새 없이 울음 소리를 내어 서로를 격려한다고 합니다. 함께 하기 때문에 먼 거리를 지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러기보다 더 먼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순례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순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공동체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렇게 서로 격려하고 힘을 얻어 함께 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힘을 얻고 신앙의 걸음을 마지막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혼자서 주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해야 갈 수 있습니다. 저에게 여러분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또한 다른 성도들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서로 도와야 하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러기가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날아갈 때 훨씬 쉽게 먼 여정을 완수할 수 있듯이 우리도 서로 협력하고 도울 때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을 훨씬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일들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주의 길을 걷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모인 공동체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공동체임을 기억하기 위해서 한마음 축제를 준비합니다. 모두 참석하셔서 함께 교제하고, 함께 먹고, 함께 게임도 하면서 하나 되게 하신 기쁨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함께 섬기고 격려함으로, 위로하고 감싸줌으로, 신앙의 경주에서 낙오자가 없이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4년 5월 12일 박일룡 목사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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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하며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도 건강한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교회를 향하여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말합니다(히 10:24).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것이 영적인 케어일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복음 안에서 더 든든하게 세워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도 사랑하고, 자신에게도 좋은 것을 해 줌으로 격려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셀프케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서로서로 사랑과 선행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셀프케어만 잘한다고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케어할 줄 알아야 하고, 나도 케어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돌보아 주며, 돌봄을 받음으로 공동체가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돌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한”마음입니다(마 11:29). 우리가 서로 돌보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gentle and humble)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도, 부모나 자녀들 잘 돌보지 못하는 것도, 성도나 이웃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가족 간에 서로 돌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족같이 여기며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할 때 그 공동체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수적으로도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달 서로 돌아보고 섬기는 귀한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2024년 5월 5일 박일룡 목사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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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지난주 내내 저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말씀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오직 그 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1-2)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 땅의 삶가운데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 같은 환경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주는 일도 참 많습니다. 진실보다는 거짓에 사람들은 더 많이 유혹을 받고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낙담하게 만듭니다. 간담이 녹는 것 같은 두려움을, 더 이상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좌절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담감과 책임이 계속해서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울부짖고 소리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을 찾습니다. 분주한 마음으로 주님께 소리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당신은 진정 살아 계십니까? 당신은 진정 선하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나의 영혼아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히 여호와만 바라라. 나의 구원은 그에게서 나온다”라고 말입니다.   잠잠히 여호와를 바랄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명도, 나의 미래도, 환경도, 지금의 상황도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나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의 고백이 무엇일까요? 계시록은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라고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계 19:6).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어떤 삶의 고난도, 죽음도 흔들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의 노래였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노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4월 28일 박일룡 목사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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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도 용납하는 것이 복음적인 삶입니다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도 용납하는 것이 복음적인 삶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저에게 적용해 보면 저는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목사로써 저의 삶은 꾀나 종교적인 일입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성경 공부를 준비하고, 심방하고, 교회의 사역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은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신명기 31장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할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의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도 가룟유다가 배신할 것도, 제자들이 도망갈 것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들의 발을 친히 씻겨 주셨습니다(요 13:1-5). 그리고 너희들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14-15절).   신앙의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당하기 힘든 그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용납하기보다는 가끔씩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바른 소리를 하는 큰아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탕자라는 것을 알면 아버지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불합리하며 불공평하게 느껴져 그 사랑에 도리어 화를 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라고 합니다(엡 4:2).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랑은 때때로 낭비 같아 보입니다. 마음의 낭비, 시간의 낭비, 정성의 낭비, 돈의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제자도의 합당한 삶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용납하는 삶, 그런 삶이 복음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교적인 인생이 아니라 조금 더 복음적인 삶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2024년 4월 21일 박일룡 목사 드림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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