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7 페이지


  • Rohthem 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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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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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밥상 공동체를 꿈꾸며
    건강한 밥상 공동체를 꿈꾸며한국 사람들에게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와 연결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인사말에도 밥이 자주 등장하죠. 어른들은 “밥은 먹고 다니냐”라며 안부를 묻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합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나 밥 안 먹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화가 나면 “넌 국물도 없다”는 말로 엄포를 놓기도 하죠. 부탁을 할 때는 “도와주면 밥 한 번 살게”라고 하고,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맛 없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한심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저래서 밥이나 벌어 먹겠냐”고 비꼬기도 하고요. 반대로 비아냥거릴 때는 “밥만 잘 먹더라”고 하기도 하고, 제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에게는 “제 밥그릇도 못 챙긴다”고 타박하기도 하죠. 피곤해서 자겠다고 할 때도 “밥 먹고 자라”는 말은 빠지지 않습니다.지난달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식탁의 교제가 많았습니다. 포도원지기 워크숍에서는 포도원지기들과 그 아내들, 부지기들, 그리고 이전 지기들까지 함께 모여 세미나를 하고 식사를 나누며 교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여선교회 연합 수련회에서도 그동안 한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할 기회가 없었던 1여선교회부터 5여선교회 회원들이 함께 앉아 먹고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고, 참 행복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예배위원회 전체 모임도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게임을 하며 웃고, 음식을 나누며 한 가족 같은 기쁨을 느꼈습니다.우리는 이런 교제를 ‘밥상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밥상은 밥과 반찬을 차려 놓은 상이고, 공동체는 이익을 추구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 연대하는 기본 정신을 지닌 모임입니다.예수님도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고, 세리와 죄인들과도 함께 식탁 교제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잔치집으로 비유하시곤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우리가 문을 열고 영접하면 그분이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이제 가을, 추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 가을에 서로 함께 먹고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한 솥 밥을 먹는 사람을 우리는 ‘식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로 자라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앗, 이러다가 앞으로 “목사님, 밥 한번 사세요”라는 말이 자주 듣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2024년 10월 6일 박일룡 목사
    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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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
    믿음은 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엄마는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아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엄마, 바깥은 너무 캄캄해서 무서워요." 엄마는 아이를 달래며 말했습니다."얘야, 예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잖니? 지금 밖에도 예수님이 계셔. 널 지켜 주실 거야." 아이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로 되물었습니다."진짜 예수님이 밖에 계신다고요?" 엄마는 다정하게 대답했습니다."그럼, 예수님은 어디든지 계셔. 네가 혼자 있을 때에도 언제나 네 곁에서 널 지켜 주신단다." 엄마의 말에 아이는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더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우리도 때때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신다고 고백하고 믿지만, 여전히 두려워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마치 문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예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이 아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으로 고난을 맞서지 못하고, 그저 안전한 곳에 머무르려 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도 그러한 모습은 아닌가요? 믿음은 내가 바라는 것들을 신뢰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1:1). 믿음은 단순히 내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는 확신을 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믿음으로 순종하고 선택하며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더 나은 영원한 소유'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아무 방향도 없이 방황하는 길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히브리서 4:16). 오늘 우리는 안전지대에만 머물려 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며 보호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그 나라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말입니다. 2024년 9월 29일 박일룡 목사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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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에 대한 표현에 대해 우리는 가끔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예배를 본다"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거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어학적으로 보면, 이 표현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 있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은 "예배를 본다"에서 "보다"라는 단어가 단순히 '구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잔치에 갈 때도 "잔치 보러 간다"라고 표현하고, 초상집에 갈 때 "상주 보러 간다"라고 말하듯, '본다'는 말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참여하고', '마음을 다해 살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장보러 간다’고 할 때에도 단지 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린다"는 표현보다는 “예배하다”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배하다'라는 말 자체에 이미 '드린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예배는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에 대한 표현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예배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예배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싶어합니다. 감동을 받거나,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기대합니다. 예배 중에 이러한 것들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 예배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드리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관객이 아닙니다. 또한 예배는 내가 받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예배의 성공 여부는 내가 얼마나 감동받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쁨으로 받으셨는가입니다. 내가 감동을 받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자세에 실망하셨다면 그 예배는 실패한 예배일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든 일상의 예배든,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그로 인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예배할 때입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자가 됩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2024년 9월 22일 박일룡 목사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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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
    오늘 내가 할 일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따라 고향, 친척,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떠났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떠남은 그야말로 목숨과 재산을 건 도박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사실입니다(히브리서 11:8).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붙들고 전부를 걸고 떠났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여정이었습니다. 룻 또한 시어머니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할 때 그녀를 "붙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룻기 1:14). 룻은 자신의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계신 그 땅으로 간 것입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룻기 1:16).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히브리서 11:1). 믿음으로 걷는 여정은 곧 모험이자 도전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돌아서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만, 믿음의 여정 속에서는 때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축복만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당황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보이지 않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도 종종 그와 같은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10년 계획을 세워 축복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때로는 실수를 하면서도 계속 걸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자녀로 이삭 하나만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그 이삭을 통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갔을 때도 그는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형들에게 복수하거나 애굽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한 "애굽 성공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자신을 지켰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해도, 그분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늘 이 순간, 내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고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면 됩니다. 2024년 9월 15일 박일룡 목사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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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경상북도 영천의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실 때, 이웃집에서 받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이름도 없었던 이 누렁이는 그렇게 저희 가족과 한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그 강아지를 집사님 댁에 맡기고 떠났습니다.몇 년이 지나, 저희 어머님께서 다시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개를 맡겼던 집사님 댁에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개가 잘 있는지 보러 가신 것은 아니었을 텐데, 놀랍게도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 개가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동네를 다니는 동안 내내 따라다녔고, 어머니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바라보다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옛 주인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이 이야기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저에게 ‘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입니다. 동물조차도 한 번 주인으로 섬긴 사람을 이토록 충성스럽게 따르는데, 때로는 사람이 동물보다 못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도 그의 생애 마지막에 마음의 쓸쓸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 4:10).그리고 16절에서 이렇게 더 회한이 담긴 말을 남깁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니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바울이 섭섭한 마음을 애써 달래보려는 자기 위안처럼 들려서, 더 애절하게 다가옵니다.그럼에도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담담히 고백합니다(딤후 4:7).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고난과 박해, 어려움과 외로움을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빌 3:10).스데반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그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조용히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행 7:55). 부활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만, 끝까지 주님을 따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 3:1).2024년 9월 8일 박일룡 목사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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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8
    성령 안에서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의 교제를 누립시다
    성령 안에서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의 교제를 누립시다삶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우리에게 평온함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고 의지하는 힘입니다.세상은 나 혼자서 모두 이겨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때로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도 우리는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기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가능성과 선함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그들에게 맡기는 용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도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연대감이며, 그 자체가 힘입니다.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있을 때, 우리는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되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의지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은 혼자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무게를 나누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그래서 건강한 공동체의 유대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앙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건강한 신앙 공동체는 서로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끼리의 연대나 유대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위로를 받고,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소망 위에 든든히 서도록 돕는 것이 신앙 공동체의 목적이며 유익입니다.가을에 새롭게 시작하는 포도원 모임을 통해, 서로 함께함으로 얻는 평온과 안정, 위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제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 서 있는 교제가 되기를 바랍니다.2024년 9월 1일 박일룡 목사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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