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2 페이지


  • Rohthem 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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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103
    상농作土: 최고의 농사는 땅을 일구는 일입니다
    상농作土: 최고의 농사는 땅을 일구는 일입니다 농사에도 수준이 있다고 합니다. 고대 중국의 말에 따르면, 하농(下農)은 풀을 기르고, 중농(中農)은 곡식을 기르며, 상농(上農)은 흙을 일군다고 했습니다. 하급의 농부는 땅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게 키웁니다. 중간 수준의 농부는 열심히 김을 매고, 농약도 치고, 병충해를 막아 어떻게든 곡식을 수확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최고의 농부는 곡식보다 땅을 먼저 생각합니다. 겨우내 땅에 거름을 주고, 기름지게 만들어 놓으면 그 땅의 힘으로 곡식이 저절로 잘 자랍니다. 땅을 일군다는 것은 곧 곡식이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입니다. 연약한 곡식의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고 흙을 걷어내 주거나, 예쁘다고 자꾸 만지다 보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것이 스스로 자라도록 기다려야 하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자녀 양육도 이와 같습니다. 급이 낮은 부모는 자녀를 방치하고, 그저 제멋대로 자라도록 둡니다. 조금 더 나은 부모는 자녀의 성적을 위해 잔소리를 하고, 학원에 보내고,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부모는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되, 그 울타리 안에서는 자유롭게 자라도록 공간을 허용해야 합니다. 아이가 넘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매번 붙잡아 준다면, 결국 걷는 법도, 달리는 법도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져야 균형을 배우고, 실패 속에서 자라납니다. 좋은 부모는 열심만 있는 부모가 아니라 지혜 있는 부모입니다. 아이도 성적만 좋은 아이가 아니라 지혜 있는 아이로 자라야 하듯이, 부모도 단순한 열심이 아니라 바른 가치와 지혜를 갖춘 존재여야 합니다. 그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서 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하게 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도, 우리 자신이 먼저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의 토양을 일구는 상농(上農)의 지혜로 살아갑시다.좋은 땅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2025년 5월 4일 박일룡 목사 
    202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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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물건을 오래도록 잘 쓰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듯,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란 처음엔 마법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정성껏 손질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금세 흠집이 생기고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제 딸은 자동차를 참 좋아합니다. 겉모습이 멋진 차를 선호한다기보다는, 차를 정비하고 손보는 그 과정 자체를 즐깁니다. 좁은 차고에는 자동차 정비용 잭과 작업 램프, 갖가지 공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혼자서 엔진 오일을 갈고, 필터를 교체하고, 왁싱까지 말끔히 해냅니다. 대학생 때 사준 중고 토요타 캠리를 무려 10년 가까이 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차는 처음 샀을 때처럼 윤기가 흐르고, 상태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렇게 아껴 타던 차는 중고차 시세보다 약간 낮은 가격에 팔았고, 지금은 엄마가 몰던 차를 이어받아 타고 있습니다. 아마도 곧 그 차도 새 차처럼 반짝이게 될 거라 믿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 많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정비 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겠죠. 미국의 여성지 Good Housekeeping에서 소개한 행복한 부부의 4가지 습관은 우리 모두가 관계 안에서 실천해볼 만한 좋은 힌트가 됩니다. 첫째, 자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작은 수고에도 고마움을 전하고, 서로가 한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도시락을 챙겨준다면 “오늘도 맛있는 점심 덕분에 행복했어요”라는 쪽지를 넣는 것처럼요. 늦게 퇴근한 배우자에게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라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둘째, 자주 대화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이야기라도 자주 나누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고, 관계의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셋째, 각자만의 흥미거리를 갖는 것입니다. 스스로 즐겁고 행복해야 상대방에게도 여유와 배려를 베풀 수 있으니까요. 서로가 각자의 취미와 시간,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관계 유지의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넷째, 일상을 함께 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꼭 특별한 여행이나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함께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과 공원을 산책하는 등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을 채웁니다. 이 모든 습관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관계는 운이나 감정의 흐름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중한 자동차를 정성껏 관리하듯이 꾸준히 손보고 다듬어가야 비로소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따뜻한 손길과 작은 정성으로 오래도록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2025년 4월 27일 박일룡 목사 
    20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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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더 푸쉬킨의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왜 슬퍼하는가 마음은 미래에 살고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삶이 참 덧없다는 생각, 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참 모질고 질기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떤 생명은 너무나 허망하게, 마치 한 줌의 바람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처럼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약 4:14)와 같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그렇다면,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서러운 날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소망은 어디에 있을까요?그 답은 부활의 소망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박해를 받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고난이 있어도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만일 우리의 삶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고전 15:19).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부활이 우리 모두에게도 소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로부터 온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2025년 4월 20일 부활주일 아침에박일룡 목사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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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
    최후의 만찬을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
    최후의 만찬을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과학자, 발명가, 화가, 건축가로서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와 함께,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장면을 그린 ‘최후의 만찬’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석회벽에 수성 안료로 그리는 프로스코(fresco) 화법이 아닌, 다빈치가 실험적으로 사용한 건식 기법으로 그려졌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1978년부터 약 20년에 걸친 대규모 복원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원된 그림도 원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최후의 만찬’ 그림 중에는 다빈치의 제자 장 피에트리노(Giovanni Pietro Rizzoli)가 그린 유화 판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영국 왕립예술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다빈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역시 원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다빈치가 남긴 습작과 비교하며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거룩한 만찬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그 뜻을 가장 잘 따르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몸과 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섬김과 희생의 삶으로 자신을 드릴 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성찬의 의미를 살아내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 그것이 곧 성찬의 삶이며, 주님의 만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잔치를 소망하며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과 함께 그 기쁨의 식탁에 앉게 될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최후의 만찬’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삶일 것입니다. 다빈치의 작품을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만찬을 우리의 삶에서 복원해 내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이때, 우리를 위해 몸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 사랑을 기억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nbs
    20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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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양극화 되는 세상, 혐오와 배제, 갈등과 자기 이익을 추구가 점점 더 대세가 되어 가고 있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런 사회 현상에 함께 매몰되어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이 시대의 흐름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롬 12: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복음에 합당한 삶은 어떻게 살아가는 삶일까요? 이런 고민가운데 다시 한번 프란체스코의 기도로 알려진 “평화의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 성도의 삶의 방향, 기도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시대에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우리의 삶이 되도록 함께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여,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2025년 4월 6일 박일룡 목사
    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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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입니다. ‘폭삭 속았수다’란 말은 제주 방언으로 “많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가족 간의 사랑을 그린 휴먼 드라마라고 합니다. 한국인에게도 다소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제주 방언과 독특한 지역 문화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는 물론 유럽의 시청자들까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이 드라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가족’이라는 주제는 국경을 초월해 모든 이의 마음을 울리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란, 우리가 무엇을 주고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안과 위로가 되는 관계입니다. 부모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힘이 되고, 자녀들 또한 그 자체로 부모에게 기쁨과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부모가 나에게 해주지 못한 것에 서운해하고, 자녀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속상해합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일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어떤 고난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깡”을 가진 아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바로 이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아버지에게 미리 유산을 달라고 요구한 철없는 아들, 그리고 그 돈을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결국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 그는 아버지의 명예에 먹칠을 했고, 그의 행동은 동네에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멀리서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20) 이 말은 탕자의 비유에서 가장 제 마음을 터치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드라마로 치자면 눈물샘 자극 포인트라고 할까요! 이 속없는 아버지는 자신의 체면도, 자존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고 그를 측은히 여기고 달려가서 안아줍니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이루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라고 말합니다(이사야 43:4).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다시 예수님 안에서 이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5년 3월 30일 박일룡 목사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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