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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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10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요즘 로스앤젤레스는 또 한 번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으로 인해 촉발된 시위가 한인타운과 다운타운 자바 시장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민자로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갑작스레 체포되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자신이 살아온 모든 터전을 두고 강제 추방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시민의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보호는 커녕 오히려 그 나라의 공권력 앞에 무력하게 내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무겁습니다. 반대로,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그 나라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국가는 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그 권리는 실제로 다양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미국 시민이면 국가에서 그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줍니다. 미국 시민권의 힘입니다. 초대교회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로마 시민은 커녕 지역 도시의 시민권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노예로 살아가거나 가난으로 인해 떠돌던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인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빌립보서 3:20; 에베소서 2:12-19; 베드로전서 2:9 참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단지 소속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입니다(로마서 8:14–17).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다스릴 자로 삼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에베소서 2:6; 계시록 3:21).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나라는 언젠가는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리 강대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삶의 최종적인 안전과 의미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만이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권세를 약속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민자들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이자, 동시에 하늘의 시민이라는 이 이중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당당하게, 그리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25년 6월 15일 박일룡 목사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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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서른 한 살에 회심을 경험합니다.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서른 살 무렵부터 약 2년간 건강 회복을 핑계로 사교계에 발을 들이고, 도박과 파티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마차 사고를 당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는 회심의 순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해 직접 글로 적었고, 그 글을 양피지에 옮겨 자신이 자주 입는 외투 안쪽에 바늘로 꿰매어 넣었습니다. 그 어떤 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이 글은 파스칼이 죽은 후에야 발견되었고,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글의 제목은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밤 열시 반에서 열두 시 반경까지”이며,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철학자와 학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확신, 확신, 감격, 기쁨, 평화.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이제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이 땅에서 잠깐의 노력을 통해 얻는 영원한 기쁨.나는 당신의 말씀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멘.” 그 깊은 밤,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 감격은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후 그는 기독교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팡세(Pensées)」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서른아홉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공간이 구원의 감격으로 채워졌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빈 공간이 있습니다.그 공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만족으로, 또 어떤 이는 세상의 성공이나 쾌락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합니다. 잠시의 위안과 즐거움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한 만족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도서 3:11)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빈 공간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그분의 은혜로 우리 안에 영원한 기쁨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파스칼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 감격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6월 8일 박일룡 목사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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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
    선교는 교회의 일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일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 서두에는 죄로 인해 땅끝으로 흩어진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창 10:31)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모인 수많은 무리가 흰옷을 입고 하나님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계 7:9–11).  창세기와 계시록 양 끝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라는 표현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전체의 흐름이자 주제입니다. 성경은 모든 민족으로 흩어진 죄인들을 복음으로 불러 모아 구원하시고, 그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찬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선교(mission)라는 단어는 성경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냄(missio)’ 사상이 성경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모든 사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교회는 선교를 수행하는 단체가 아니라, 선교적 존재(Missional Church) 자체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한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적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일—복음을 증거하고, 세례를 베풀며, 제자를 양육하고, 교제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활동이 곧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교적 사명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지역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일과 함께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헌금과 수고, 사람 파송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 케살테낭고 지역의 학교와 교회를 돕기 위해 바자회를 열고, 단기 선교 팀을 파견하는 일도 이에 속합니다. 이같이 선교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고, 복음의 은혜에 참여하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빌 4:18). 또한 선교의 일에 기쁨으로 동참할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실 것입니다(빌 4:19). 2025년 6월 1일박일룡 목사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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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
    우리의 교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교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래전에 감동 깊게 본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한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라는 영화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여운이 깊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암 투병 중인 두 사람이 병원에서 친구가 되어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함께 실현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삶의 마지막을 모험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흥미로운 여행이나 스릴 넘치는 활동이 아닙니다. 영화의 끝에서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카터'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조용한 식사를 나눈 후 생을 마감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잭 니콜슨이 맡은 '에드워드' 역시 오랫동안 절연했던 딸과 화해하고, 손녀에게 입을 맞추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합니다. 결국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임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바쁜 일상과 삶의 무게 때문에 정작 가족과의 시간을 뒤로 미뤄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여러 가지 사역과 일로 바쁘다는 핑계,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관계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곧 연휴와 방학이 다가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함께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시간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서먹했던 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식사 자리를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부부가,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보거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돈 걱정 없이 식사하며 웃는 시간도 삶에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 ‘한마음 축제’에서 온 교회가 함께 예배드리고, 먹고, 웃으며 교제했던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던 때일 것입니다. 가족들과, 성도들과 더 자주, 더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멀리 높고 고독한 곳에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교제 가운데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의 자리를 오늘 다시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2025년 5월 25일 박일룡 목사
    20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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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5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외국인들이 한국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해’라고 합니다. 참 따뜻한 말이지요. ‘사랑’이라는 말은 중세 한국어의 ‘사량(思量)’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한자어를 풀이하면 ‘생각이 많음’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를 오래도록 떠올리고, 마음 깊이 아끼는 감정인 셈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다’—이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제가 또 하나 참 좋아하는 우리말은 ‘아름답다’입니다. 아름다운’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언어학자들은 ‘아름’이라는 어근에 ‘답다’라는 형용사 어미가 붙은 말로 보고 있습니다. ‘아름’은 순우리말로 크다, 넉넉하다, 풍성하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예컨대 ‘한 아름’이라 하면, 두 팔로 가득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을 말하듯,‘아름답다’는 표현 속에는 넉넉함과 풍성함이 주는 감동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답다’는 어떤 특성을 갖춘 상태를 뜻하는 말이니, ‘아름답다’는 말은 곧 ‘넉넉하고 풍성한 것에 걸맞은 상태’, 즉 보기에 좋고 마음마저 기분 좋아지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단지 외모나 몸매 같은 겉모습에만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씨, 품격, 삶의 태도를 두고 ‘아름답다’고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기부’, ‘아름다운 봉사’라는 말을 씁니다.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는 어떤 말과 붙어도 그 자체를 더 빛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빛나는 조합이 아닐까요? 잘생긴 사람, 예쁜 사람, 똑똑한 사람, 성공한 사람, 건강한 사람 등 사람을 꾸며주는 말들은 많지만,‘아름다운 사람’만큼 따뜻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 인색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반면에 어떤 상황에서도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기쁨이 되며, 그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우는 귀한 존재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아름다운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조금 더 여유를 품고, 조금 더 풍성하게 나누고, 조금 더 오래 생각하고,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넉넉한 신앙 말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오늘도 소망해 봅니다. 2025년 5월 18일 박일룡 목사  
    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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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
    오뚝이 인생이 되기 위해서
    오뚝이 인생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나의 실수로 인해 고난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고난이 닥치기도 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가리켜 ‘오뚝이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말이지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은 아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9).정말 오뚝이 신앙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뚝이 인형은 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형의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일어나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무게 중심이 낮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난에 쓰러질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울이 고백한 힘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며, 그 예수님의 죽으심을 날마다 짊어질 때 나오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10절).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과정도 결과도 모두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아직 내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겸손과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에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바로 겸손함과 순종에서 나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고백할 때,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오뚝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듯이, 우리도 삶의 중심을 겸손히 낮출 때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십니다. 2025년 5월 11일 박일룡 목사  
    20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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