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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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9개의 글이 있습니다.
  • 115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은 말을 합시다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은 말을 합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피곤해진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영감, 나 좀 업어줄 수 없을까?” 할아버지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들을 소리가 겁이 나서 마지못해 업어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나, 무겁지?” 그러자 할아버지는 투덜거리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돌아오는 길, 이번엔 할아버지가 다리를 삐끗했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주라.” 할머니는 갈 때 일을 떠올리며 그를 업어주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든 할아버지는, 이번엔 말을 바꾸어 묻습니다. “나, 가볍지?”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가득 찼으니까.”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노부부지만,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안 도와주는 것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저도 가끔 아내가 부탁하는 일을 다 해놓고, 정작 말 한마디로 마음에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때로는 어떤 육체적인 도움보다 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은 무엇을 말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느냐, 언제 말하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잠언 27장 1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때를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를 괴롭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했고(약 3:2), 사도 바울도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낸 것과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골 4:6). 우리의 말이 소금처럼 맛을 내고, 시의적절하며, 사람을 세워주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상처를 주거나 받는 두려움 없이, 마음을 나누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서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이 일은… 아무래도 제가 먼저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5년 7월 27일 박일룡 목사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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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4
    구속역사의 D-day와 V-day
    구속역사의 D-day와 V-day D-Day는 군사 작전 용어로, 전략적인 공격이나 작전 개시일을 뜻합니다. 작전일까지 남은 날짜를 기준으로 하루 전은 D-1, 이틀 전은 D-2로 표현하지요. 작전 개시 당일은 D-0이기에 일반적으로 "D-Day"라고 부릅니다. 가장 잘 알려진 D-Day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있었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입니다. 그날은 1944년 6월 6일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었고, 독일군의 패망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종 승리의 날, 이른바 V-Day(Victory Day)까지는 1년 가까운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D-Day 이후 전세는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지만, 그 사이에도 수많은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독일군도 전세를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역부족이었지요. 하나님의 구속 역사, 곧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 가시는 구원의 드라마 속에도 이와 같은 D-Day와 V-Day가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죽음을 이기시며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구속역사의 D-Day가 이뤄진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의 날,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V-Day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치열한 영적 전투가 계속될 것입니다. 이미 머리가 상한 사탄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어떻게든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려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그날, V-Day는 반드시 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그의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만물을 그 발아래 두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된 교회를 보호하시며 이끌어 가십니다.“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 1:22-23). 그렇기에 교회를 무너뜨릴 권세는 그 어떤 곳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일지라도,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 앞서 싸우시며 우리를 대신해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이 아무리 커도,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8장 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D-Day 이후를 살고 있습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싸움입니다. 승리의 그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갑시다.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이끄실 것입니다. 2025년 7월 20일 박일룡 목사
    202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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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3
    내 믿음이 연약할 때도 붙드시는 예수님
    내 믿음이 연약할 때도 붙드시는 예수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믿음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실제로도 예수님께서 믿음이 작은 자들을 책망하셨고, 믿음 없음을 한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은 강해야 하고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스스로 “나는 믿음이 좋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해 줄 수는 있겠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괜찮은 줄 알았던 믿음이, 세상의 거센 풍파 앞에서는 속절없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낙심되고, “내 믿음이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질 때도 있습니다.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는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그 가운데 구명줄이 내려졌습니다. 그 줄을 붙들면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실제로 붙잡고 버텨 보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면 끝내는 힘이 빠지고 맙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키고자 애쓰다가도 결국 물결에 휩쓸려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는 걸까?’ 히브리서 기자는 “뒤로 물러가면 멸망함이라”고 말하며 돌아가지 말라고 외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그 믿음조차 흔들릴 때 우리는 누구를 바라봐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뿐 아니라 도와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히 4:15; 2:18). 삶의 고난 가운데 지치고 힘이 빠질 때, 내 믿음이 약해질 때,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급류 속으로 친히 들어오셔서 우리를 건져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분을 붙들 힘이 없을 때에도 나를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내 믿음이 연약할 때도, 넘어질 때도, 예수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일한, 그리고 영원한 소망—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025년 7월 13일 박일룡 목사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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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다 보면 새 대통령이 인수위 없이 곧바로 국정을 시작하면서, 이전 정부의 장관들과 함께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새로운 인선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국회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임명할 수 있는 비서관과 차관부터 인선을 시작해, 국정을 빠르게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장면은 대통령이 장관들을 향해 “국민의 신복”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이 그 직책을 권세로 여기기보다, 국민을 섬기는 자리로 여긴다면 그것만큼 바람직한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원탁에 앉아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는 분명한 권위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과 사명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교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바울은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했을 뿐 아니라, 하늘의 권위에 동참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계 3:21)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늘의 보좌 곁에 앉는 것—그것은 성도의 영광스러운 지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롬 15:16),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요 그리스도의 일꾼” (고전 4:1)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영광을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행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어진 것입니다. 한때 영국의 여왕은 전 세계 식민지에 특사를 보냈습니다. 특사는 여왕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말하며, 여왕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된 것은 “여왕의 뜻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특사가 자기 생각이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면, 아무리 권위 있는 자리에 있어도 본분을 잃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아는 자로서, 그분의 심복이자 일꾼으로 이 땅에 파송된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고, 고단한 사역일지라도, 그것은 왕의 일을 수행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자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심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정체성과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충성되이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7월 6일 박일룡 목사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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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1
    우리가 일어설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일어설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이야기할 때 늘 언급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400미터 준결승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데렉 레드몬드(Derek Redmond)라는 영국 선수는 400미터 경주와 1600미터 계주의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준결승에서 데렉은 힘차게 출발하여 약 250미터를 달리던 중,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를 부여잡고 쓰러집니다. 햄스트링이 찢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 경주를 이어가려 했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몇 걸음 달린 뒤 다시 주저앉고 맙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의료진이 달려와 그를 돕고자 했지만, 데렉은 이를 거절하고 계속해서 경주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한 다리로 달리려 애쓰지만 몇 발짝 가지 못하고 다시 무너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고통과 눈물로 가득 찬 얼굴이었습니다. 그때 관중석에서 한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안전요원들의 제지를 뚫고 트랙으로 달려나옵니다. 바로 데렉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를 본 데렉은 어린아이처럼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터뜨립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렇게 끝까지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자 데렉은 고통 가운데서도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끝까지 달릴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너와 함께 이 경주를 끝까지 함께 뛰어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아들을 부축하고, 두 사람은 함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데렉은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6만 5천 명의 관중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데렉이 경주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곁에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도 하나의 경주와 같습니다(히 12:1-2; 디후 4:7; 빌 3:14 참조).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는 쓰러지기도 하고, 상처 입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끝까지 경주를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겐 데렉 레드몬드의 아버지보다도 더 크고 깊은 사랑을 가지신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오늘도 다시 일어나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5년 6월 29일 박일룡 목사 
    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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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불확실한 시대에 붙드는 확실한 소망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불확실한 시대에 붙드는 확실한 소망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우리는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아직 그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2022년 2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발하며 세계 경제를 다시 흔들었습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간의 전쟁도 몇 개월 내 종전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여전히 치열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으며,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전격 발표한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 공급망과 금융시장이 또다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이 현실화되었고, 중동 전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원유 수급 불안과 안보 위협은 전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역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선포된 계엄령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으로 인해 국정의 연속성과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이 내일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사고, 경제적 위기, 관계의 단절 등으로 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 모든 계획을 멈춰야 했던 지인의 이야기, 잘 운영되던 사업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된 가정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불확실한 시대와 삶 속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확실한 소망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37). 그렇습니다.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확실한 소망은 바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정세는 바뀌고, 인간의 약속은 쉽게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일으키고, 인도하시며, 결국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2025년 6월 22일 박일룡 목사
    202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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